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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 메리 셸리

by 융커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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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미숙하고 방황하던 20대를 보내며, 써놓은 독후감입니다. 블로그로 옮기면서 교정과 수정, 편집을 거쳤으나, 특별한 통찰이나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 소개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


본문 내용 및 감상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연히 TV를 돌리다 명화(?) 느낌이(?) 나는 영화가 나는 화면이 나오기에 멈추었다. 어떤 한 흉측한 사나이와 한 사람이 선실 안에서 서로 설전을 하더니 이제 그만 끝내자며 서로 부둥켜 앉고 차가운 바다 밑으로 떨어졌다. 정말 몇 분 되지 않는 어느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 영화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 영화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그러한 장면을 연출할 만한 스토리는 프랑켄슈타인 뿐이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아챈 것이다.

 

  이러한 프랑켄슈타인을 책으로 읽으면서 내가 가장 적어보고 싶은 것은 바로 만약에~~’이다. 비록 역사에 만약에~~’는 허용되지 않지만, 문학에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상이지 않는가? 그리고 상상이야 말로 문학의 동기이지 않는가?

 

 먼저 내가 프랑켄슈타인이었다면? 나 역시 그 이름 없는 창조물을 만들었을 것이다. 사람의 지적쾌락은 어떠한 쾌락보다 우선하다고 하지 않는가. 나 역시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프랑켄슈타인처럼 대승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나와 내 가족이 행복하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그 이름 없는 창조물의 짝을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 짝을 만들었을 때, 그 짝은 그 이름 없는 창조물과 달리 본성이 온순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짝을 일반 사람들과 비슷한 크기로 만들면 해결될 문제이지 않은가? 사람들이 모두 바보인가? 자신들과 비슷한 크기의 창조물이 자신들을 죽이게 나두리 리는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그저 커플을 만들어주고 서로 잘 살게 기도해 줬으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앙리와 엘리자베스 모두 살렸을지도 모른다.

 

  그다음으로 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그 이름 없는 창조물’. 가진 것이 많으면서도 오만하지 않기는 쉬우나, 가진 것이 없으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힘들다고 공자가 이야기했다. ‘그 이름 없는 창조물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인간세계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외모, , 명예, 혈통 중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가 프랑켄슈타인을 따라다니는 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에게 안기고 싶어 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진 것은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힘이다? 나라면? ‘그 이름 없는 창조물처럼 고상하게 사랑과 우정을 갈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헛간에 숨어 몰래 양식을 가져 주지도 않았을 것이고, 프랑켄슈타인에게 짝을 만들어달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그 월등한 힘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할 것이고, 나에게 제물을 바칠 것이다. 나에게 복종하고 나는 살아 있는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갑자기 절대반지라도 낀 느낌이다.)

 

  항상 에세이를 쓸 때 그것에 대한 분석과 나의 생각을 썼지 이렇게 작품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에 나 자신을 직접 대입해 보기는 처음이다. 프랑켄슈타인과 그 이름 없는 창조물이 되어 보기 위해서 흘려 읽는 것이 아니라, 한 줄 한 줄 모든 묘사를 느끼면서 읽어보았다. 그 감정의 변화가 가슴 깊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제발 그러지 마!’라고 소리쳐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러한 마음이 작품 속 인물에 나를 대입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의 결말을 보면서 공자가 말했듯이 우리가 진정 쉴 수 있는 곳은 죽음뿐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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