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숙하고 방황하던 20대를 보내며, 써놓은 독후감입니다. 블로그로 옮기면서 교정과 수정, 편집을 거쳤으나, 특별한 통찰이나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 소개
인문고전이 사랑을 받았던 정조 시절에 등용된 서얼 중 한 명인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본문 내용 및 감상
길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좀 더 마음을 기울이면 그가 살아온 이야기, 그의 가슴속에 담은 생각들을 알게 된다. 더욱더 마음을 기울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벗이 되리라, 박제가와 나처럼. 우리와 다른 벗들처럼.
-본문 중에서
다른 벗들도 모두 책 보기를 즐겨하였으나, 이서구와 나의 경우는 좀 더 특별하였다. 우리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었다. 글자 하나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며 적절하게 씌어졌는지 파고들었다. 알려지지 않은 귀한 책일수록 손으로 옮겨 쓴 필사본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나오면 다른 책들을 찾아보거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잘못된 곳을 바로잡았다. 그러고는 서로 맞추어 보았는데, 대부분 서로의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헤치듯,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나가듯, 우리는 그렇게 책 속에 빠져 들었다. 수십 년 동안 그와 나 사이에서 오고 간 책들은, 서로의 손 때가 묻어 닳아 갔다.
-본문 중에서
여느 때의 나답지 않게 먼저 입을 열어 조심스럽게 여쭈어 보았다.
"땅은 끝없이 아득하고 평평하기에, 높고 낮은 산과 들, 사람을 비롯한 온갖 만물이 그 위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공처럼 둥글다면 위태로워 어떻게 제 몸을 지탱하겠는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한 고을, 기껏해야 한 나라 안의 땅덩어리에 불과하네. 마당에서 내 집을 바라볼 때와 높은 산 위에서 내려다볼 때가 다르지 않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이해하려면, 저 하늘 아득한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바라보아야 한다네."
그러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불쑥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자네들은 월식을 본 적이 있는가?"
"예. 지난달에도 월식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룻밤 사이에 보름달이 점점 형체가 없어지고 어두워지니, 거... 마음이 이상하더군요."
뒤편에 앉아 있던 백동수가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마음이 이상하다?"
선생은 그 말에 잠시 소리 없이 웃으셨다.
"그건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가려서 그렇게 된 거라네. 그 모습이 어떻던가?"
"예, 반듯한 선처럼 곧게 가려지는 게 아니라 주먹으로 움켜쥐듯 점점 둥글게 먹어 들어갔습니다. 아, 정말, 완전히 가려진 검은 그림자는 달과 꼭 같았습니다!"
유득공이 약간 들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그걸 보면 땅이 둥글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월식은 바로 지구의 거울이라네. 월식을 보고도 지구가 둥근 줄 모른다면, 거울로 자기 얼굴을 비추면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본문 중에서 이덕무의 벗들과 홍대용과의 대화
그런데 나의 글을 본 사람들은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느냐고 비웃었다. 아름다운 경치와 고상한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라야만 좋은 시가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연암 선생이 계신 자리에서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형편없지 않습니까, 이덕무의 됨됨이라는 게? 옛글을 읽고 옛사람을 배웠다면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의 촌스러운 생활과 자질구레한 세상 일들을 노래하고 있으니, 어찌 제대로 된 시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들의 품격을 담은 시가 아닙니다.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아주 볼 만하겠구먼!"
연암 선생은 내 글에 관심을 보이며, 나를 비난하는 사람을 오히려 나무라셨다고 한다.
"아니, 옛사람들의 글과 닮지 않은 것이 어째서 흠이 된단 말인가?"
"...."
뜻밖의 반응에 무안해진 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선생의 말씀은 계속되었다.
"도대체 우리에게 옛날이란 무엇인가? 옛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던 그때를 '옛날'이라고 생각했겠는가? 그 당시에도 그들도 역시 '지금' 사람이었을 게야, 언젠가는 우리도 그들처럼 '옛'사람이 될 터이고. 그러니 자네의 말처럼 그때 그들의 시가 훌륭하다면, 지금 이덕무의 시도 뒷날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성미가 괄괄한 선생은 나중에는 버럭 역정까지 내셨단다.
"더구나 자네가 말하는 옛사람들이란, 우리 조선의 옛사람도 아니고 중국의 옛사람들이 아닌가?"
-본문 중에서 박지원의 일화
"코끼리의 다리는 다섯이로군."
코끼리의 코가 길게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다리인 줄 알았던 까닭이다. 이렇게 코끼리를 처음 본 사람들처럼, 선생은 모든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중심으로 보려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평소에도 선생은 나와 벗들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자네들의 눈과 귀를 그대로 믿지 말게. 눈에 얼핏 보이고 귀에 언뜻 들린다고 해서, 모두 사물의 본모습은 아니라네."
선생이 탓하는 것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아니었다. 눈과 귀야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사람의 머리에 전해주는 감각 기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가 되는 역시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음식은 손이나 기껏해야 입으로 집는 것이며,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모두 다리여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동물인 코끼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비좁은 틀에 거대한 코끼리의 몸을 구겨 넣으려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코끼리를 다리가 다섯 개인 하마라든가, 주둥이가 새의 부리처럼 별나게 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코끼리에 대한 것뿐이겠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날의 선입견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세상은 늘 이대로 계속되어야 하고, 학문도 옛사람의 문장을 그대로 외우는 것이 제일이라 여기게 된다. 글도 옛사람의 것을 본떠지어야만 제대로 된 글이라는 대접을 받는다. 사람과 사귈 때도 신분이나 지위의 높고 낮음을 먼저 보게 되니, 참다운 벗을 만나 마음을 나누기도 어렵다.
선입견은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사람과 사물의 본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편견이기도 하다. 그러한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은 새로운 활기라고는 없는 세상,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일 것이다.
-본문 중에서
"사람들은 제가, 다른 것보다 상점을 늘리는 일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상점에서 사고파는 물건이 많아야, 백성들의 생활도 더 편리해지고 더 나아지는 것을 왜 모른단 말입니까? 농사일에 고된 백성들에게, 입을 옷과 집을 지을 도구만이라도 쉽게 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농사일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한다면, 농산물의 수확도 더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박제가의 가슴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리마다 즐비한 상점뿐만이 아니었다. 연경 대로에는 네모난 흰 돌이 깔려 있었다. 하루 종일 그 위를 지나다니는 수레바퀴와 말발굽 소리는 마치 우렛소리와도 같아 귀가 멍할 지경이었다. 중국은 땅이 있는 어느 곳이나 수레가 없는 곳이 없건만, 조선 땅은 그렇지가 않았다. 신라 시대만 하더라도 수레가 제법 다녔고, 삼국을 통일하는 데도 수레와 창고가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도 말이다.
봇짐장수의 어깨에만 의지하기에는, 그리고 가여운 노새의 휘어진 잔등에만 의지하기에는, 조선 팔도의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은 너무나 많았다. 수레가 있으면 물건도 많이 싣고 오고 가는 속도도 훨씬 빨리질 터였다. 박제가는, 꼼꼼히 관찰해 보니 수레를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 하였다. 수레가 다닐 넓은 길이 없는 게 문제라면 길을 닦으면 될 터였다. 조선에 수레가 없는 것은, 조정의 벼슬하치들이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고 필요로 하는 것을 해결해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박제가는 잘라 말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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