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숙하고 방황하던 20대를 보내며, 써놓은 독후감입니다. 블로그로 옮기면서 교정과 수정, 편집을 거쳤으나, 특별한 통찰이나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 소개
본문 내용 및 감상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창의' '창의'라고 이야기하면서 중요하다고 소리 높인 것이 10년은 넘은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창의'란 무엇인가? 이 책에 나오는 '200명의 청소년에게 창의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의 글들을 몇 개 인용하자면 '창의란? 자기가 있는 상황이나 현실에 제약받지 않고 꿈꾸고 싶을 만큼 생각할 수 있는 쉼터' '답이 없는 것' '나만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자신만의 생각' 등이 있다. 다 맞는 말이지 않는가? 딱 정확히 사전적으로 정의는 할 수 있겠지만 정말로 사람들 마다 자유스럽게 정의할 수 있는 그 자체가 '창의'이지 않는가! 즉, 사람들의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을 창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 중에서 같은 사람이 있는가? 아직까지 인간복제가 가능한 기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 70억 인구는 모두 다르다. 심지어 같은 배에서 거의 같은 시간대에 나온 쌍둥이들조차 다르다. 같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여전히 '창의'를 외치면서 '창의'를 찾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간단히 답이 나온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얼마나 배가 고프신 세대였는가? 하지만 그 배고픔을 참으면서도 당신의 자식들만큼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누리게 하시겠다고 자신의 끼와 재능을 접고 산업전선에서 죽어라 일하셨는가? 그러니 이렇게 세계적인 하드웨어 생산국인 되지 않았는가? 이제 최소한 굶어 죽는 사람은 나오지 않지 않는가?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배는 부른 나라가 되었다. 밥은 굶지 않는다. 역사가 시작 이래 우리 부모님 세대가 처음으로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하다. 우리가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웠듯이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배고픔을 제대로 모르고 자란 지금 우리 세대들은 이상할 정도로 인생의 방황과 세상의 담벼락의 높이에 절망하면서 자살로 죽어간다. 자아실현을 할 줄 몰라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살아남기 위한 맹수의 눈빛은 사라졌고 초식동물들의 짜증만 남아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담벼락은 예전과 같은 담벼락이 아니다. 우직하게 한 곳에서 판다고 반드시 뚫어지던 그런 담벼락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사회, 하드웨어의 양적인 성장이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요즘 세상은 예전과 같이 하나만 잘하는 I형 인재가 아니라 2~3가지를 다 아는 T형이나 π형 인간을 원한다. 세상의 담벼락이 이것저것 아는 것을 요령 것 다 연결하고 동원해야만 뚫리는 담벼락으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이런 것을 잘 가르쳐주시질 못한다. 당신들께서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에, 아직도 밤 12시까지 죽어라고 학원에만 있게 만드신다. 그냥 그렇게 모나지 않게, 그리고 손해 보지 않게, 적당히 살아가게, 비슷한 공장에서 비슷하게 생산된 사람으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그리고 대학 가서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펼쳐보라 한다. 웬걸, 고등학교 때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펼쳐질까? 다들 공무원 공부를 하게 만드는 이 세상이?
최근 와서 이슈가 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 예전에는 그것이 지금만큼 많이 일어나기 힘들었다. 배고 고팠기에 빨리 철이 들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배고픔이 없는 세대는 '어른아이'라고 할 정도로 철이 들지 않는 세대다. 힘이 넘치는 야수들을 저들끼리 좁은 우리 않게 가둬둔 결과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가? 그것은 '질'이다. 더 이상의 양적 교육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질'은 무엇인가? 한 가지나 다름없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눈 다면 '디테일'과 '창의', 다른 말로 '섬세'와 '다름'. '디테일' 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중'과 '예민함'이다. 세상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예민함', 한계를 느끼지 않고 느낄 수 있는 '예민함', 그리고 그것을 포착해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집중'. 그렇다면 '창의'는? 존중이다.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틀렸다고 하지 마라. 아이에게 틀린 답이라고 말하고 정답을 가르쳐주는 순간 아이는 그 이상을 생각해기 힘들다.(여담이지만 정말 객관식 문제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듯이 단지 다른 생각을 한 뿐이다. 이와 같이 아이들을 생각을, 그리고 그 '창의성'을 캐치해 내고 키우는 것은 온전히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이 모자라 보이는 것들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캐치해 낼 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섬세' '다름' '예민함'과 같은 단어는 좋은 의미를 갖지 못하였다. 예민하고 섬세하고 조금 다른 아이들은 금세 다루기 힘든 골칫덩어리로 여겨졌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관점이었는지 온몸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가 조금이라도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면 알고 있는 '21일 법칙'! 어떠한 습관을 만드는 것에는 '21일'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조금씩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자. 조금만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집중해서 바라보고, 조금은 꼬아서도 보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이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지난다면, 지금 우리 세대들이 '질'적으로 성숙해진다면, 우리는 우리 부모님의 하드웨어적인 세상과 우리들의 소프트웨어적인 세상을 우리 후손들에게 모두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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