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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연구 : 방법서설ㆍ성찰 / 르네 데카르트

by 융커 2023. 5. 23.

 이 글은 미숙하고 방황하던 20대를 보내며, 써놓은 독후감입니다. 블로그로 옮기면서 교정과 수정, 편집을 거쳤으나, 특별한 통찰이나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 소개

데카르트 연구 : 방법서설ㆍ성찰
데카르트 연구 : 방법서설ㆍ성찰


본문 내용 및 감상

 어쩜 처음 제대로 읽은 인문고전일 지도 모르겠다. 먼저 데카르트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는 '진짜'다. 살아가다 보면 만나는 사람들 중 '이 사람은 진짜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 데카르트가 그러하다. 책을 읽다 보면 그저 짜집기 한 수준의 책과, 아니면 거기에 양념을 더한 책, 아니면 일기장 같은 책들을 보게 된다. 그러한 책들은 알기 쉽고 흥미를 유발하는 데는 아주 좋지만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일기장 스타일은 조금 예외를 두자. 정말 제대로 살아온 사람들의 전기와 에세이 같은 일기장은 삶에 엄청 도움이 된다). 그의 책의 내용들이 지금에서 보면 틀린 부분도 많다. 그러나 그가 사색한 노력과 그것을 통한 이뤄낸 결과물들은 정말 영롱하게 빛나는 별과 같다고 느껴진다.

 

 그의 책에 내 의견을 조금 더 넣어본다면 나는 '이성'이라는 단어에 반대한다. 데카르트는 '이성'이라는 것을 동물적인 본능과 반대되는 단어로 사용했고, 사색의 원천으로 생각했지만, 현대 사람들은 사람의 뇌가 '신경세포'의 총합체이자 진화의 산물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배고픈 상태에서 눈앞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그것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다양한 이유로) 경험으로 축적된 신경세포들이 그것을 먹고자 하는 신경세포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뭐, 어떻게 연결시키다면 모든 것이 생존 본능이기는 하다. 책을 읽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일을 하는 것, 운동을 하는 것까지 말이다. 하지만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세상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데카르트가 '이성'을 강조한 이유는 그것이 사색을 하는 것에 가장 필수적인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진리라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언가 이 책을 읽고, 떠올랐던 많은 생각들이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그가 생각했던 것들이 내게 너무 잘 들어와서 잡념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텼던 생각들은 온전히 나의 '진짜' 생각들이지 않을까 싶다. 그의 책을 읽으며, 필사하며, 사색하며 시간을 보내본다.

 

1.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증적으로 진리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진리를 받아들이지 말 것. 속단과 편견을 피할 것.

2.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것을 분할할 것. 이것은 분석의 규칙이다.

3. 가장 단순한 것에서 시작하여 가장 복잡한 것에 이를 것, 이것은 종합의 규칙이다.

4. 문제의 모든 요소를 다 열거하고 그 중의 단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 것

 

 *필사

 나로서는 내 정신이 보통 사람의 정신보다 모든 점에서 더 완전하다고 주제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나는 가끔 몇몇 사람만큼 생각이 재빠르고, 상상이 빈틈없이 선명하며, 기억이 풍부하고 생생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는 성질 외에는, 정신의 완전성을 이루는 성질을 전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성, 즉 양식만이 우리를 인간되게 하는 것으로, 우리를 짐승들로부터 구별케 하므로 나는 사람마다 그것이 온전히 갖추어져 있다고 믿고 싶으며, 또 이 점에서 철학자들의 보통 의견을 따르고 있다고 믿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젊은 시절에 어떤 길에 들어섰는데, 그 길은 나를 몇 가지 견해와 격률로 인도하였고, 나는 다시 그것들로부터 하나의 방법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이 방법을 쓰면 내 지식을 점점 더 늘리고 또 조금씩 높여, 마침내 내 평범한 정신과 짧은 생애로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 방법으로 나는 이미 여러 가지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잘 났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스스로 보잘것없다고 여기려고 애쓰며, 또 철학자의 눈으로 볼 때 사람들의 갖가지 행동과 사업은 거의 모두가 헛되고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리 탐구에 있어서 내가 이미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진보에 매우 크게 만족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앞날에 대하여 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터이므로, 순전히 사람이 하는 일로서 확실히 좋고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감히 믿는다.

 

 하지만 나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의도는 각자가 자기의 이성을 잘 이끌어가기 위하여 따라야 할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가 어떤 모양으로 내 이성을 이끌어 가려고 힘썼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교훈을 주려는 사람들은 그 교훈을 받는 사람들보다 더 유능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아주 조그마한 실수라도 한다면 그 때문에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남들처럼 학자들 축에 끼게 되자마자 나는 아주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공부하려고 애썼는데도 더욱 내 무지를 발견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여겨질 정도로 여러 가지 의심과 오류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해 나아가리라는 자부심은 조금도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문제에 관하여는 참된 의견이 하나 이상 있을 수 없을 터인데, 실제로는 갖가지 많은 의견이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학식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주장되는 것을 보고서 나는 참되어 보이기만 하는 모든 것은 거짓에 가까운 것이라고 여겼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기만 하는 동안, 나는 거기서 확신을 주는 것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또 전에 내가 철학자들의 갖가지 견해에서 본 바와 거의 같은 다양성을 본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거기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우리에게는 아주 엉뚱하고 우습게 보이지만 다른 큰 나라에서는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시인되고 있는 것이 많이 있음을 보고, 그저 남들이 한다고 해서 혹은 습관 때문에 옳게 여겼던 것을 이제는 그 어느 것도 너무 굳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깨달은 것이다.

 

 책으로 공부하게 되는 학문들, 적어도 그 근거가 개연적일 따름이요, 많은 사람들의 갖가지 경해로 조금씩 구성되고 커져서 전혀 논증할 수 없는 학문들은, 양식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자기가 부딪친 일에 관하여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단순한 추리만큼은 진리에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하여 받아들인 모든 견해에 관하여는 한번 그것들을 깨끗이 버린 다음 좀 더 좋은 견해를 채택하거나, 혹은 전과 같은 견해라도 이성의 규준에 비추어 바로잡은 후 다시 받아들이거나 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공공의 조직은 한번 쓰러지면 다시 세우기가 매우 어렵고, 또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다시 진정시키기도 어려우며, 그 전복은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따름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직들이 갖가지로 서로 다른 점을 보면 그것들 중 많은 것이 여러 가지 불완전성을 가지고 있음은 확실하지만, 이 불완전성들은 관습에 의하여 많이 완화되었다. 그뿐 아니라, 관습은 많은 불완전성을 부지불식간에 피하거나 고쳤는데, 이런 일은 우리가 머리를 짜내도 그만큼 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그것들은 거의 언제나 조직의 변혁보다 견디기 쉬운 것이다.

 

 내 계획은 나 자신의 생각을 개혁하고 전적으로 나에게 속하는 토지 위에 집을 세우려는 것을 넘어서 지나친 데 나아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세상은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째 종류의 사람들은 실상보다도 더 재주가 있다고 스스로 믿고서 판단을 서둘러 내리기를 스스로 금할 줄도 모르고, 자기의 모든 생각을 질서 있게 해 나아갈 만한 인내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그들이 받아들인 원리들을 의심하고 흔히 사람들이 따르는 길을 떠나게 되는 자유를 가지게 되는 날에는 좀 더 곧장 가기 위하여 택해야 할 좁은 길을 더듬어 갈 수 없고, 일생 동안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둘째 종류의 사람들은 자기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어떤 판단 속에 다른 사람들보다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가려내는 능력에 있어 못하다고 판단할 만한 이성, 혹은 겸손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자기 스스로 보다 나은 것을 찾기보다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의 견해를 따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철학자들 중 누군가가 이미 말하지 않은 것이란 하나도 없다.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이끌어가야만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아무 판단도 없이 지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아주 적은 법률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주 엄격하게 지킬 때 한 나라가 더 잘 통치되는 것처럼, 나는 논리학을 구성하는 많은 규칙들 대신에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을 지키지 않는 법이 없도록 하겠다고 확고하고 한결같은 결심만 가진다면 다음의 네 가지 규칙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첫째는 내가 명증적으로 참되다고 안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조심하여 피할 것. 그리고 의심할 여지가 조금도 없을 정도로 아주 명석하고 아주 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을 것. 둘째는 내가 검토할 난제의 하나하나를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잘 해결하기에 필요한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는 수서를 따라 내 생각들을 이끌어 나아가되,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위로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들에 대한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자연대로는 피차 아무런 순서도 없는 것들 간에도 순서가 있는 듯이 단정하고 나아갈 것. 그리고 끝으로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한 매거(枚擧)와 전체에 걸친 통관(通觀)을 어디서나 행할 것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알기 쉬운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됨

 

 나는 수학에서 그것이 내 정신으로 하여금 진리를 기뻐하고 그릇된 추리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 습관을 얻게 하는 것밖에는 다른 아무 효용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수학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해서 수학이라는 공통의 이름으로 불리는 여러 학문을 모두 습득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학문들의 대상이 서로 다르기는 해도 그 대상들에서 발견되는 갖가지 관계나 비례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고찰하지 않는 점에서는 모두 일치하고 있음을 보고서 나는 이 일반적으로 비례들만을 검토하며, 그 인식을 더 쉽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되는 대상들 속에서만 그러한 비례들을 그 대상들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나중에 그것들에 어울리는 다른 모든 대상들에 더욱 잘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 비례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어떤 때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따로 고찰할 필요가 있고, 또 어떤 때는 그저 그것들을 마음에 간직하거나 그 중 많은 것을 동시에 파악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고서 나는, 그것들의 하나하나를 더욱 잘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선()으로 상상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내가 선보다 더 단순한 것을 찾을 수 없었고 또 선보다 더 판명하게 내 상상과 내 감각에 나타나는 것을 찾지 못했기 대문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서는, 혹은 그 중의 여러 개를 동시에 파악하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짧은 기호로써 그것들을 나타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이와 같이 함으로써 기하학적 해석과 대수의 모든 장점을 끌어들이고, 양자의 모든 결함을 피차 딴 것에 의하여 없앨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먼저 철학에서 확실한 원리를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임시로 하나의 도덕을 마련하였다. 첫째는 내 나라의 법률과 관습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은총으로 내가 어렸을 적부터 배워 온 종교를 한결같이 지키며, 다른 모든 일에서는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총명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보통 받아들이고 있는 가장 온건하고 가장 극단에서 먼 의견들을 따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의 의견을 모두 검토해 보려고 하여 그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여기기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가장 총명한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제일 좋다고 믿은 것이다. 또 페르시아 사람들과 중국 사람들 가운데도 우리 가운데 총명한 사람 못지않게 총명한 사람이 있을 터이지만, 내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따라 나를 규제하는 것이 제일 유익하리라 생각하였다. 또 무엇이 참으로 그들의 의견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보다 그들의 실제 행동을 주의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우리의 습속이 타락하여 자기가 믿는 바를 스스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일을 믿는 생각의 작용과 자기가 미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생각의 작용은 서로 다른 것이며, 이 양자는 각기 다른 하나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많은 의견 가운데서 나는 온건한 것들만을 택하였다. 온건한 의견은 언제나 실행하기에 가장 편하고 참으로 가장 좋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모든 극단은 으레 좋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요, 또한 실수할 경우에도 극단적인 의견 중 하나를 택하고 나서 나중에 그 반대의 극단을 따라야 했음을 깨닫는 것보다는 올바른 길에서 덜 벗어나기 때문이었다. 또 나는 특히 자신의 자유를 조금이라도 제한하게 될 모든 약속을 극단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것은 사람들이 어떤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 마음이 약하여 생각을 바꾸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하여, 혹은 좋고 나쁘고가 문제 되지 않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 때, 상거래의 안전을 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맹서나 계약을 맺는 것을 허락하는 법률들을 내가 반대하는 때문이 아니다. 다만 세상에는 항상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본 때문이요, 또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면, 내 판단을 더욱더 완전케 하려고 기약하고 있고, 그것들을 더욱 나쁜 것이 되게 하려고 하지는 않으므로, 만일 어떤 일을 한 때 옳다고 여겼는데,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 될 때, 혹은 내가 그것을 옳은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될 때, 여전히 그것을 좋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면, 양식에 대하여 큰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 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내 둘째 격률은 행동에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확고하고 가장 결연한 태도를 취하며, 또 아무리 의심스런 의견이라 하더라도 일단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면, 아주 확실한 것이 양 어디까지나 그것을 따르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들을 본받아야 한다. 그들은 우왕좌왕하면서 더욱 미로에 빠져 들어서도 안 되고, 또 한 군데 머물러 있어서도 안 된다. 처음 우연한 생각으로 택한 방향일지라도 신통치 않은 이유로 바꿀 것이 아니라, 줄곧 그 방향으로만 걸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들이 바라는 곳에 바로 도착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숲 한가운데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은 어디엔가 도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의 행동들은 조금도 지체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우리의 능력이 가장 참된 의견들을 가려낼 수 없을 때에는 가장 옳게 보이는 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아주 확실한 진리이다. 또 어느 것이 더 옳게 보이는지 전혀 알 수 없을 경우에는 그중 하나를 취할 것을 결심하여야 한다. 그렇게 결심한 이유는 아주 참되고 확실한 것이었으므로 실생활에 관한 한 나중에 그것을 의심스러운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오히려 가장 참되고 확실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 때 이후 나는 이렇게 함으로써 어떤 때는 어떤 일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행하다가 나중에는 나쁜 것으로 여겨 행하지 않는, 약하고 동요하기 쉬운 사람들의 마음을 늘 괴롭히는 모든 후회와 양심의 가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셋째 격률은 언제나 운명보다도 나를 이기며, 세계의 질서보다는 오히려 내 욕망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또 일반적으로 우리가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밖에 없으므로, 우리의 외부에 것들에 관해서 최선을 다한 후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모든 일은 우리에게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믿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얻을 수 없는 것을 조금도 바라지 않게 하고, 그리하여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하는 데로 이 격률만으로 충분하도록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의지는 그 본성상 오성이 어떤 식으로든 가능한 것으로 보여 주는 것들만을 바라므로, 만일 외부에 있는 모든 선을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으로 여긴다면, 우리의 출생으로 말미암는 것으로 생각되는 선들을,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좋은 집안에 태어나지 못함으로써 얻지 못한다고 해도, 중국이나 멕시코의 왕국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섭섭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지금 다이아몬드만큼 잘 썩지 않는 물질로 된 몸을 가지거나 새처럼 날기 위하여 날개를 가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속담의 말대로 필연을 덕이 되게 하여, 앓고 있으면서 그대로 건강하거나 옥중에 있으면서 그대로 자유롭기를 원하지 않을 것도 확실하다. 그러나 모든 사물을 이러한 각도에서 보는 버릇을 가지게 되는 데는 오랜 훈련과 명상을 되풀이하는 것이 필요함을 나는 인정한다. 그리고 옛날에 운명의 지배를 벗어나 여러 가지 고통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신들과 더불어 행복을 겨룰 수 있었던 철학자들의 비밀도 주로 여기에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이 자기들에게 준 여러 가지 제한을 항상 헤아림으로써 자기의 생각밖에는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완전히 깨닫고 있으므로, 오직 이 한 가지 깨달음만으로 다른 사물들에 대한 애착을 전혀 가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생각에 대하여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 점에서 그들은 이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자연과 행운에서는 아무리 많은 혜택을 입고 있을지라도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절대로 이렇게 처리하지 못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부유하고, 더 힘있고, 더 자유롭다고, 생각할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이 도덕의 결론으로 나는 이 세상에 있는 여러 종류의 직업을 훑어보고, 그 중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려 하였다. 나는 남들의 직업에 관하여는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고, 내가 지금 종사하고 있는 일, 즉 내 이성을 개발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치며, 진리 인식에서 스스로 부과한 방법을 따라 될 수 있는 데까지 전진을 계속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후로 더할 나위 없는 만족을 느껴 왔으므로,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흐뭇하고 더 깨끗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방법을 통하여 나에게는 무척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알려져 있지 않는 몇몇 진리를 매일 발견하였으므로, 여기서 얻는 만족은 내 정신을 온통 채워 다른 모든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세 가지 격률은 나 자신을 교육하려는 계획에 기초를 둔 것일 따름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구별하는 어떤 빛을 우리들 각자에게 주셨으므로, 적당한 시기에 나 자신의 판단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의견들을 음미할 것을 기약하고 있지 않았던들, 그 의견들로 내가 만족해야 한다고는 한 순간이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좀 더 좋은 의견이 있을 경우 그것들을 발견할 기회를 잃지 않을 희망이 없었더라면 그저 남의 의견을 따르면서 마음 편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으로, 만일 내가 따른 길이 나에게 가능한 모든 인식을 확실히 얻게 해주는 것이요, 또한 내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참된 선을 얻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들, 나는 내 욕망을 억제할 수도 없었을 것이요, 또 만족을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의지는 무엇이든지 오성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보여 줌에 따라서만, 혹은 따르고 혹은 피하기 때문에, 잘 행하기 위해서는 잘 판단하면 되는 것이요, 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즉 모든 덕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다른 모든 선을 전부 차지하는 데는 할 수 있는 한 가장 잘 판단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반드시 만족을 얻게 된다.


 
이와 같이 이 격률들에 대해서 확신을 얻은 후, 이것들과 내 신념 속에서 항상 첫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신앙의 여러 가지 진리를 제외하고, 내 의견의 나머지 모든 것에 대하여는 마음대로 내어 버릴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실상 이상으로 보기를 절대로 바라지 않을 만큼은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여 사람들이 나에게 준 명성에 합당한 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조금이라도 의심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절대로 거짓된 것으로 버린 후에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내 신념에 남지 않을지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때때로 감각이 우리를 속이기 때문에, 감각이 마음속에 그려주는 대로 잇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상정하려 하였다. 그리고 기하학의 가장 단순한 문제에 관해서도 추리를 잘못하여 여러 가지 오류 추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나도 다른 누구 못지않게 잘못에 빠질 수 있다고 판단하고 내가 전에 논증으로 보았던 모든 추리를 잘못된 것으로 버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라는 이 진리는 아주 확고하고 확실하여, 회의론자들의 제아무리 터무니없는 상정(想定)들을 모두 합치더라도 흔들어 놓을 수 없음을 주목하고 나는 주저 없이 이것을 내가 찾고 있던 내가 찾고 있던 철학의 제1 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내 존재는 아주 완전한 것이 못 됨을 반성하고 나보다 더 완전한 어떤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을 어디로부터 배웠는가 찾기로 하였다.

 

 나는 이 생각들 속에 이것들을 나보다 우월한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므로, 만일 이것들이 참되다고 하면, 이것들은 본성이 어떤 완전성을 가지고 있는 한에서 이 본성에 의존하는 것이요, 또 만일 이것들이 참되지 않다고 하면, 내가 이것들을 무로부터 얻었다. 즉 내가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이 내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은 우리의 모든 관념이나 개념이 진리의 어떤 기반을 가지고 있을 것임을 분명히 일러 준다.

 

 나는 아주 확실한 논증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새로운 의견을 결코 내 신념 속에 받아들이지 않으며, 또 단 한 사람에게라도 불리하게 되는 일이 생길 수 있는 의견에 관하여는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항상 아주 조심해 왔으나, 위에 말한 이를 말미암아 나는 내 의견 가운데도 잘못된 것이 있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이 세상에서의 생의 첫째가는 선이요, 다른 모든 선의 기초가 되는 건강의 유지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정신조차도 체질 및 신체의 기관들의 배치에 아주 크게 의존하므로 전반적으로 사람들을 지금보다도 더 현명하고 더 유능하게 하는 어떤 수단을 발견할 수 있다면 바로 의학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실험에 관하여는 우리의 지식이 진전할수록 그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무릇 처음에는 그 자체가 우리의 감각에 나타나고, 또 우리가 조금만 살펴보면 반드시 알게 되는 실험들을 이용하는 것이 그보다 더 드물고 까다로운 실험들을 찾는 것보다 낫다. 이러한 드문 실험들은 우리가 가장 흔한 일들의 원인을 아직 알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가끔 우리를 속이며, 또 그것들이 의존하는 조건들이 거의 언제나 아주 특수하고 세밀하여 파악하기가 아주 힘드니 말이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 내가 따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나는 세계 안에 있는 혹은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원리들 즉 제1원인들을 일반적으로 찾으려 하였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만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만을 고찰하며 또 그 원리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본래부터 있는 진리의 어떤 씨앗으로부터만 끌어내었다. 이것 다음에, 나는 이 원인들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최초의 그리고 가장 정상적인 결과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이 일을 통하여 나는 하늘〮별〮지구 그리고 지구 위에 있는 물〮공기〮불〮광물 및 모든 것 중 가장 흔하고 가장 단순하여 가장 알기 쉬운 다른 것들 것 발견하였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는 내가 좀 더 특수한 것들로 내려가고자 했을 때 너무 갖가지 것이 내 앞에 나타났으므로 나는 결과로부터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또 많은 특수한 실험을 해보지 않는다면 지상에 있는 물체들의 형상들 즉 종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지상지상에 있는 무한히 많은 다른 물체들로부터 가려내는 것이란 인간의 정신으로는 불가능하며 또한 따라서 그것들을 우리가 이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이것 다음에는 전에 내 감각에 나타난 일이 있는 모든 대상으로 내 정신을 돌이켜 훑어보았는데, 내가 발견한 여러 원리를 가지고서 충분히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자연의 힘은 아주 풍부하고 광대하며, 또 이 원리들은 아주 단순하고 일반적인 것이어서 거의 어느 결과나 그것이 원리로부터 갖가지 방식으로 연역될 수 있음을 먼저 내가 알며, 나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보통 그것이 이 방식들 중 어느 방식으로 원리에 의존하는가를 발견하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점에 대해서 나는 설명하는 방식 중 어느 하나를 택함으로써 그 결과가 다르게 되는 몇 가지 실험을 다시 찾는 일 이외에 다른 대책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와 같이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대부분의 실험을 어떤 각도로 해야 하는지를 잘 본다고 여겨지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는 또한 그러한 실험이 참으로 그 수가 많고, 내 손으로도 또 내 수입으로도, 설사 지금보다 천 배나 더 많이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 전부를 하기에는 넉넉한 것이 못 됨을 안다. 따라서 이제부터 내가 그러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편의를 더 많이 가지느냐, 혹은 덜 가지느냐에 따라 자연의 인식이 혹은 더 전진하고 혹은 덜 전진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쓴 논문에서 알리려는 것이요, 또 나는 대중이 그것에서 받을 수 있는 이익을 밝혀 인류 전체의 복리를 바라는 모든 사람 즉 외모로나 의견으로서만이 아니라 정말 유덕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들이 이미 해본 실험을 나에게 알려 주고 또 앞으로 해야 할 실험의 탐구에서 나를 도와줄 것을 기대하였다.

 

 우리가 진리의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곤란과 오류를 극복하려고 애쓰는 것을 전투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요, 조금 일반적이고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어떤 그릇된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투에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저서가 전혀 남아 있지 않는 고대 철학자들의 경우, 사람들이 그들에게 돌리고 있는 터무니없는 말에 대해서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아주 불합리했었다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에 가장 훌륭한 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이요, 다만 사상이 잘 못 전해졌을 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 중 아무도 그들을 능가한 경우가 거의 한 번도 없었음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그들의 철학을 하는 방식은 아주 평범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아주 편한 것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구별과 원리들의 애매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무엇이든지 다 아는 것처럼 대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가장 날카롭고 유능한 사람에 대해서도 그들의 모든 주장을 고집하되 논파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점에서 그들은 눈 뜬 사람과 유리하게 싸우기 위하여 그 눈 뜬 사람을 아주 컴컴한 동굴 깊숙이 끌어들이는 소경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내가 사용하고 있는 철학의 원리들을 공표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원리들은 사실상 매우 단순하고 명백하여, 내가 이것들을 공표함으로써 나는 그들이 싸우려고 내려간 그 동궁에 마치 몇 개의 창을 열어 주고 햇빛이 들어가게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우수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이 원리를 알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든 것에 관해서 말할 줄 알며 또 박학하다는 명성을 얻기를 원한다면, 진리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그럴듯한 것으로 만족함으로써 더 쉽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것은 온갖 문제에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찾아내어질 수 있지만, 진리는 몇 가지 소수의 문제에서 조금씩 밖에는 발견되지 않으며, 또 그 밖의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게 될 때에는 모른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진리를 조금 인식하고 있는 것은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허영을 부리는 것보다 나은 것임을 틀림없는 일이지만 만일 그들이 이와 같이 그러한 허영을 버리고 소수의 진리 인식을 택한다면, 그리고 내 계획과 비슷한 계획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이를 위하여 나로서는 이 서설에서 이미 말한 것 외에 아무것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내가 이룩한 것보다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들은 또한 더 유력한 이유에서 내가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그들 스스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는 무엇이든지 순서를 따라 음미했기 때문에 아직 내가 발견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는 것이 지금까지 내가 부딪칠 수 있었던 것보다는 그 자체 더 어렵고 더 감춰진 것임이 확실하며, 또 그들로서는 그것을 나에게서 배우니보다 그들 스스로 알게 됨으로써 훨씬 더 큰 기쁨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 그들이 처음에는 쉬운 것들을 찾고, 조금씩 순서를 따라 좀 더 어려운 다른 것들로 나아감으로써 얻게 되는 습관은 내 모든 가르침보다도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건대, 만일 내가 젊었을 적에 그 후 내가 증명한 바 있는 모든 진리를 배웠다면, 그리고 그 진리들을 배우는 데 아무 힘도 들이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그 밖의 다른 어떤 진리도 알지 못했을 것이요, 또 적어도 새로운 진리들을 찾아내려고 힘씀을 따라 언제나 그 진리들을 찾는 데 있어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습관과 숙련을 결코 얻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요컨대, 다른 누구도 일을 시작한 사람보다 더 잘 성취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세상에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20년에 걸쳐 생각한 모든 것을 거기에 관해서 두세 마디 말만 듣고 곧장 다 안다고 상상하는 사람들, 또 더욱 날카롭고 민첩할수록 그만큼 더 잘못하기 쉽고 진리를 파악하기가 더 어렵게 되기 쉬운 사람들이 내 원리라고 믿는 것 위에 어떤 엉뚱한 철학을 세울 기회를 가지게 되고, 그리고는 그 잘못을 나에게 돌리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내 것인 의견들에 관해서 말하건대, 나는 그것들이 새로운 것이라 하여 핑계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의견들의 근거를 잘 생각해 본다면, 그것들은 아주 단순하고 또 상식에 아주 잘 일치하기 때문에, 동일한 문제에 관해서 있을 수 있는 다른 어느 의견보다도 덜 이상하고 덜 기묘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나는 이 의견들 중 어느 것에 대해서도 내가 최초의 발견자라고는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그것은 전에 누가 그런 의견을 말해서도 아니요, 또 아무도 말하지 않아서도 아니라, 다만 이성이 그것들을 나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에 받아들이게 된 것을 자랑할 따름이다.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전적으로 순수한 이성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옛날 책만을 믿는 사람들보다 내 의견들을 더 바르게 판단하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해 전에 나는 깨달은 바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많은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 왔고, 그 후 내가 그것들 위에 세운 것은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므로 학문에 있어서 언젠가 확고부동한 것을 세우려고 한다면 일생에 한 번은 전에 받아들였던 모든 의견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토대를 쌓기 시작해야 한다고. 그러나 이것은 아주 큰일이라고 여겨졌으므로 나는 이 일을 하기에 더 적합한 때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성숙한 연력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연기해 왔으므로 아직도 주저하여, 남아 있는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이제부터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진리의 원천이 최선의 하나님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고 유능하고 교활한 어떤 악한 영()이 온갖 재주를 부려 나를 속이려 하고 있다고 가정하련다. 하늘〮공기〮땅〮빛깔〮모양〮소리 및 모든 외적인 것은 악한 영이 내 쉽사리 믿는 마음을 움켜쥐기 위하여 사용하는 환영이요 속임수일 따름이라고 생각하련다.

 

 나도 슬그머니 옛 의견들에 다시 잠겨 들어가 그 잠에서 깨는 것을 불안하게 여긴다.

 

 내가 나를 무엇이라고 상상한다면 사실 나는 구상하기(, 마음에 그려보기) 때문이다. 상상한다는 것은 물체적인 것의 모양 혹은 상을 바라보는 것일 따름이니 말이다.

 

 성찰의 순서  내 정신 속에서 내가 맨 처음에 발견한 개념으로부터 점차로 그다음에 발견되는 개념으로 넘어가는 이 관념들 중 어떤 생득적(生得的)인 것이고, 또 다른 어떤 것들은 밖으로부터 나에게 온 외래적(外來的)인 것이고, 또 다른 어떤 것들은 나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범하는 오류들(이것들만이 내 속에 불완전성이 있음을 드러낸다)이 어떤 것인가를 고찰해 볼 때 나는 이것들이 동시에 작용하는 두 개의 원인에 의존한다는 것, 즉 내속에 있는 인식의 능력과 선택의 능력 즉 의지의 자유에, 다시 말하면 오선과 동신에 의지에 의존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학문 연구의 순서


 
자기 생활의 행동을 규제하기에 충분한 도덕을 세우는 데 힘써야 한다. 이것은 지체(遲滯)를 허락하지 않는 일이요, 또 우리는 무엇보다도 잘 살도록 힘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덕을 세운 후에는 논리학을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리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성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논리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이 논리학에서는 익히는 일이 중요하므로 수학의 문제와 같이 쉽고 단순한 문제들을 오래 두고 실제로 연습하는 것이 좋다. 철학 자체는 마치 한 그루의 나무와 같아서 그 뿌리는 형이상학이요, 그 주기는 자연학이요, 그 가지는 다른 모든 학문이며 이것들 가운데 주요한 것은 결국 의학〮기계학 및 도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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