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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 I. B. 비숍

by 융커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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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미숙하고 방황하던 20대를 보내며, 써놓은 독후감입니다. 블로그로 옮기면서 교정과 수정, 편집을 거쳤으나, 특별한 통찰이나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 소개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본문 내용 및 감상

 항상 근대사를 배우다 보면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항상 객관화된 자료가 없고 항상 합리적인 모습보다는 정치적인 모습으로 무조건 조선은 순진하고 나름 잘 살아가는데 외국들이 들어와서 무참하게 유린하였다고 편이 나눠있기 때문에 공부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영국의 여성여행가가 긴 세월 동안 여행을 하면서 조선과 외국의 이해관계가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조선을 여행하면서 쓴 기록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이 어떠한 나라인지 알기 너무나도 좋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조선후기 지도층의 무능함에 대해서 개탄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지도층들은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만 생각했었다. 방법도 요즘과 유사하다. 송신탑을 하나 세우는데 100냥이 필요하면, 사또는 200냥을 부르고, 아전은 250냥을 불러 백성들을 수탈한 뒤 사또가 100냥, 아전이 50냥을 챙기는 형식이었다. 이것이 나라 발전을 어떻게 발목을 잡았을까? 세도정치가 시작된 이후로 배를 채우려는 관료들의 수탈은 백성들의 '오늘 노력하면 내일이 나아질 수 있다'라는 동기부여를 없애버렸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양반과 관리들의 수탈이 대상이 되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저 조금 '가난'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처신이었다. 이렇게 적당한 '가난'이 목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이 일어나겠는가. 특히 이 책에서 연해주 지방에 나오는 조선인들과 조선 땅의 조선인들을 비교하고 있는데, 연해주 지방의 조선인들은 조선땅의 조선인들과 달리 항상 밝고 부지런하다고 적고 있다. 그들에게는 '내일 더 나아질 것이라는, 그리고 자신이 번 것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동기부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름 역사에 대해서 많은 것을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정말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특히 그동안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환상을 많이 깨 줬다. 그들은 고종황제와 외국을 끼고 그저 정치게임을 벌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다지고 배를 채우는 데에는 엄청난 집념을 보인 사람들이지만 결코 백성들을 사랑하는 인물들은 아니었다. 흥선대원군은 권력을 잡자 무리한 공사로 경제를 망가뜨리고 백성들의 원망을 샀으며, 명성황후는 자신들의 친인척들을 관리로 임명하여 자신의 가문의 배를 채우는데 급급했다. 을미사변을 미화할 생각 전혀 없다. 일제가 우리 민족의 황후를 참살하고 그 시체를 불태웠다는 것에 엄청난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이 책으로 인하여 명성황후 역시 권력을 탐하던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이 책을 보면서 또 한 가지, 폐쇄된 사회의 교조화된 성리학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교조화된 성리학으로 인하여, 조선은 사람보다 글자에 더 집착하는 사회가 되었다. 남의 눈치 때문에 한 사람의 어머니이자, 아내를 죽이는 것이 용납이 되고, 그저 지나가다가 손이 스쳤다고 자살하는 사회, 그리고 사람이 한 사람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신분에 따라서 죽을 때까지 차별받는 세상. 솔직히 유교는 농업사회에 잘 어울리는 도(道)이다. 적절한 계급으로 자신이 주어진 역할이 명확하고,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되고, 따라야 할 것으로 인, 의, 예, 지를 제시했었다. 그러나 그 유교가 중국에서 양명학, 고증학 등으로 점점 변화할 동안에도 조선은 500년 전 성리학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뻗혀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현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굳어진 사회는 고인 물처럼 썩어 들어갔으며, 양반들은 자신의 가문 중에서 성공한 한 사람에게 기대고 살았으며, 그 사람은 자신의 가문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백성들을 수탈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백성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나라는 좀 먹음으로써, 결국 나라를 외국에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였다.

 

 이러한 지도층을 배성들에게 무슨 애국심이 있었겠는가? 저자인 비숍 여사 역시 명확하게 이야기한다.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애국심이나 지도층에 대한 존경심은 전혀 없다고, 오히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관자(정부 통행증)를 보면 자신들을 수탈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고, 그래서 제 값을 치르겠다고 몇 번이나 설득해야 했다고. 만약 일반백성들에게 지도층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조선에 대한 애국심이 있었다면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였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정복고를 선택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민족성에 대한 애정으로 독립을 하였기 때문에 왕정복고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조선 후기 백성들의 모습을 요즘 우리 국민들의 모습에서 보는듯하여 너무나도 아쉽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명의 사람들을 생각이 났다. 안중근 의사, 이건희 회장, 박정희 대통령이다. 먼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지 못했으면 우리나라는 독립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내 온건파였으며 조선 합방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을, 그리고 조선백성을 삼키기 위해서 야금야금 전진하던 사람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그를 쏴 죽이지 않았다면, 일본 내 군부가 조선에서 참혹한 짓을 하지 않았다면, 수탈에 시달려온 조선의 모든 백성들은 정말 일제를 구세주로 여기고 내선일체를 받아들이고 식민지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았을 수도 있다. 지금 쯤 내가 이 글을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적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이 생각난 이유는 '동기부여'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시장에서 유세를 하러 돌아다니는데 한 할머니가 땅을 치고, 절을 하면서 '우리 좀 살려주십시오'라는 말을 했다. 그때 당시 나는 그 뉴스사진을 보고 그 할머니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러나 오늘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비웃을 밖에 없었다. 임진왜란 이후 백성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가? 전쟁에서 살아남고 피폐해진 고향을 복구해 놓으니 윗대가리들의 어리석은 외교 전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 유린당한다. 그리고 그것이 끝나고 나니 사회질서를 세운다며 성리학의 교조화되고, 남녀의 차별이 너무나도 굳어져 버린다. 또한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든데 수탈은 시작이 된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아오는데 외국과의 개항으로 무언가 세상이 바뀌어 갔다. 그리고 또 윗대가리들의 잘못으로 나라를 빼앗긴다. 나라를 빼앗은 일제는 처음에는 외국문물들은 많이 들여오고 기존 계급사회를 많이 무너뜨려서 좋은 세상을 만드나 했지만 모든 젊은이들을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끌고 가서 개죽음과 성노예로 삼는다. 강한 민족성으로 독립을 하니 이번에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로 같은 민족끼리 싸워 국토가 초토화된다. 이렇게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그런데 한 지도자가 나서서 외친다. '우리 한 번 잘살아보세' 그는 국민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서 국민들에게 '동기부여'를 준다. '오늘 열심히 일해서 우리 자식들은 배부르게 살게 하자'라고 외친다. 그래서 국민들은 미친 듯이 일한다. 현대식 건물들이 올라가고 공장들이 세워지고 수출을 시작하면서 점점 살기 좋은 사회로 변한다. 결국 절대적 배고픔이 해결되는 세상이 되었다. '희망'이 현실이 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국민을 위했고, 정말 나라를 발전시킨 그런 지도자가 나온 것이다. 절대 박정희 대통령을 미화할 생각 없다. 그는 일제에서 군복무를 했으며, 독립군을 때려잡았고, 남로당 빨치산이었으며, 쿠데타를 일으키고 독재를 하면서 손에 자국민의 피를 묻힌 인물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나이 든 사람들은 그때를 그리워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그리워할까? 왜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 하나로 정치계에서 성공을 한 것일까? 나이 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절대적 배고픔이 얼마나 힘든 것을,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동기부여를 해주었고, 실제로 그 '희망'이 '현실'로 만들었다. 이것이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의 '과'를 덮고 있는 '공'이다.

 

 그렇다면 현재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 것은 집단적 '동기부여'이다. 단 한 가지, '배고픔을 해결하고 우리 자식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자'라는 기준으로 개인의 희생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적 '동기부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세대에 필요한 것은 개별적 '동기부여'이다. 오늘 열심히 일하면 '나'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그러한 동기부여가 필요한 것이다. 간단하게 우리나라는 개인의 '특허권'이 존중받지 못한다. 개인의 '아이디어'가 존중받지 못한다. 무언가 만들어 놓으면 항상 힘 있는 자들이 다 빼앗아 간다. 학교에서 양아치들의 갈취가 피해학생들의 삶과 학교 생활에 대한 '동기부여'를 얼마나 빼앗는지 생각하면 될 것이다. 결국 개인들은 대기업이 아닌 한 대한민국에서 성공은 어렵다고 생각하고, 우수한 인력들은 해외로 빠져나온다. 제대로 된 존중과 대우 없는 일방적 희생에 대한 요구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생각이 났다. '생각 좀 하고 살자'에서 그런 글을 보았다. 2급 조련사는 매로서 다스리지만, 1급 조련사는 매와 당근을 같이 쓰고, 특급 조련사는 당근만 쓴다고, 그렇게 '동기부여'를 한다고. 그리고 말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자신보다 더 많은 돈을 줘라고. 그는 당근으로 사람들을 '동기부여' 시켰다. 당근만으로 결국 그는 지금의 삼성을 일으켜냈다. 그는 특급조련사인 것이다. 그가 국가권력을 능가하는 행동으로 사람들의 시기와 비난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닮고 싶은 CEO에서 빠지지 않는 이유이다. 그는 자신의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현재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두려워도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을 움직이고 삼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사람들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과연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동기부여' 할 것인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진정 '사람이 답이다'. 나는 어떤 조련사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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