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강우석, 2003
멀리 저 멀리 기억 속에서 영화를 끄집어내어 본다. 19년 전 봤던 영화 실미도는 많은 수식어가 붙은 영화였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천만 관객영화, 실화 기반 영화, 군 특수작전 영화, 반공이 아닌 군 영화, 선역과 악역의 더블 턴 등 많은 것들은 가진 영화였다. 전쟁영화라고 한다면 반공영화나 영웅영화에 익숙하던 나로서는 꽤나 큰 충격이었고, 그 충격은 나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 온전히 던져졌다.
당시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과거 목숨을 요구했던 군 경험들이 인터넷에 하나씩 올라오면서 공유되던 시절이었다. 북파공작원들의 전설적인 무용담이나, 무장공비를 때려잡은 수기들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범죄자들을 잡아서 북파공작원을 만들었다는 소문도 이래저래 나돌았다. 지금 돌아보면, 범죄자들의 인성과 정신력으로는 절대 특수부대의 훈련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에,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드라마 '야망의 전설'의 영향력 때문인지, 형벌부대로 북파공작원을 많이 훈련시켰다는 소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실미도'가 개봉했다. 당시 아직 가득했던 마초적인 낭만과 민주주의 시대의 과거에 대한 반성, 인터넷의 입소문까지 더해져서 한국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당시 헌혈을 통해서 영화권을 갖고 있었고, 저 영화는 꼭 봐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기 선택으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었던 것 같았다. 서면에 있는 롯데시네마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으면서, 선을 넘어본다는 두근거림을 같이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19년 전 영화이지만 그 플롯이 다 기억이 난다. 안성기가 설경구를 설득하는 교도소 장면부터,
허준호가 배에서 수류탄을 까고,
범죄자들을 실미도로 다 잡아드린 다음, 혹독한 훈련을 시작하면서,
부대 내에서 서열정리가 이뤄지고,
불만이 터진 인간들은 탈출을 하지만 공개처형이 장면까지,
그리고 출동이 언제될 지 모르는 지루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부대의 불만이 고조되고, 안성기가 일부러 흘린 부대원 제거 소식을 들은 설경구와 정재영과 강신일을 반란도, 특히 강신일과 기간병의 우정도 기억이 많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청와대로 향하던 버스에서 다 같이 자폭하던 장면은 당시 남자라면 가지고 있던 마초이즘을 충족시키고도 남았던 것 같다.
영화표를 보면서 그 때의 나이로 돌아가본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설레는 마음은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서 중년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이가 되니 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로는 군인의 과잉충성과 간부의 비리로 점철되어 있는 청년들의 희생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저런 군생활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만 든다.
군인은 까라면 까는 것이 맞지만, 스스로의 충성을 가진 군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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