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미숙하고 방황하던 20대를 보내며, 써놓은 독후감입니다. 블로그로 옮기면서 교정과 수정, 편집을 거쳤으나, 특별한 통찰이나 교훈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냥 편하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책 소개
본문 내용 및 감상
흔히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자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후세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공자이다. 한 마디로 유교라는 종교(?)의 신인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공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실패(?)했다고 평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다. 지속적인 정쟁에 말려서 몇 번이나 축출당하고 끝없는 유랑을 하면서 다른 사상가들이나 은거인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그러나 또한 아이러니하게 그가 정치판에서 굳건한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후학교육에 힘써 그의 가르침이 널리 널리 퍼지게 되었다. 마치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예전에 논어를 읽었을 때, 그리고 다른 책들에서 이 구절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그렇게 와닿지가 않았다. 하지만 논어는 한 번 읽어서는 절대 안 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에 이 구절을 보면서 생각을 해봤다. 아는 자, 그냥 아는 사람이다. 이론적으로 이것이 좋다 저것이 나쁘다고 아는 사람. 마치 자기 계발서를 소설책 읽듯이, 수능공부하듯이 외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 실천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과에 따라서 부화뇌동한다. 이것저것 잰다. 어떤 게 더 지름길이고, 어떤 것이 더 편한지 생각을 하고, 효율성과 효과성을 재고 그렇게 실천을 한다. 그리고, 힘들면 힘들어한다. 즐기는 자, 모든 것을 즐긴다. 어떠한 목표지점을 가면 좋을 때도 있고 역경도 있고 행복도 있고 슬픔도 있다. 그 모든 것을 즐긴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재밌게 할 줄 안다. 예전에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한 말이 생각난다.'불황도 좋고, 호황도 좋다'. 그가 이런 경 지지 않았을까? 쓴맛 단맛을 다 즐길 줄 아는 사람^^
왜 세상이 시끄러울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그 순서를 지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제가는커녕 수신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나와서 치국평천하를 하겠다고 설치니 세상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현대판 선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라면 수신먼저 하면서 모든 공부를 끝내고 세상을 향해서 덤벼들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즉, 생각하고 나서 움직여라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세상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발전을 위한 수신과 다른 사람을 위한 위인이 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즉, 움직이면서 생각한다. 현재 약자를 뜯어먹는 사회(물론 역사적으로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인 현대사회구조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면 생각과 실천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사실 책을 볼 때를 제외하고 전공공부를 할 때면 잠이 쏟아진다. 변명은 하지 않겠다. 아직 공부를 좋아하는 단계가 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괴로운 독서의 과정을 견디다 보면 독서간 즐거운 시간이 오듯이 전공공부도 마찬가지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라도, 머릿속이 잡생각이 피어오르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하다 보면 멀리서 비치는 빛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또한 세상 모든 스승이 열심히 하는 제자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지 않겠는가. 공자가 한 모퉁이를 가르쳐 줬을 때 나머지 세 모퉁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 육포 열 개 이상 가져온 자에게 가르쳐 보지 않은 적인 없다. 이와 같은 것들은 공자가 어리석은 사람, 가난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는 열정, 최소한의 성의만 보여준다면 가르침에 구분을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 교욱의 중요성을 알고 몸소 실천한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은 그 누가 모르겠는가. 엉뚱한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가장 먼저 손 본 것이 교육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그 중요성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즐기는 자에 대한 구절 말고 또 하나의 구절, "군자는 화합하지만 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뇌동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소인이었나 보다. 어떠한 세미나에 가도 혼자 별 말 하지 않고 꾹 있으면서 속으로는 다른 사람을 비웃으면 우월감을 느껴보던 그 마음, 아직 덜 고쳐졌다. 또한 섣불리 아는 체하지 말고 항상 물으라는 말씀, 이것도 너무나도 반성하게 만드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섣불리 아는 체 했다가 다 뒤집어쓰고 큰 일을 그르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말은 가슴에 잇는 말을 머리로 필터링해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 재밌는 게 공자님은 문과 함께 무도 역시 강조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리학의 교조화가 시작되었던 조선에서는 참 신기한 게 이러한 공자님의 가르침을 따랐던 조석의 문하생들이 대부분 나라를 구했다. 정인홍, 곽재우 같은 인물들, 펜으로 나라를 발전시킬 수는 있지만 나라를 지키는 것은 칼이라는 것을 공자님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나도 운동 한 개쯤은 배웠으면 좋겠다. 유도 같은 실전 무술, 자식들에게 꼭 운동 한 개는 시킬 것이다. 문무의 균형을 모두 갖춘 엘리트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정도는 원칙이지만 권도는 융통성이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권도는 할 만하다' 참 멋진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아는 말이다. 하지만 왜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일까? 바로 원칙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고민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 분은 나의 지도교수님이시다. 교수님께서는 나의 고민을 들으시더니 무조건 닥치고 책을 더 읽으라고 하셨다. 논어, 소학, 중용, 대학 등등, 네가 읽은 책의 양은 어디 가서 내밀 수 있는 양이 절대 아니라고. 맞는 말이다. 그래서 30살 전에 2000권 채워 보려고 한다.
인재를 귀하게 여기고 잘 등용하는 것, 이것은 공자님도 강조하신 말인데 이 부분에서 나의 롤모델인 조조가 생각이 났다. 약간의 흠집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장점을 보고 그 사람의 능력을 쓰고, 또한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되었던 조조는 나의 롤모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는가? 능력 있는 초야의 인재보다는 대부분 인사권자와 가까운 사람들을 쓰고 같이 흥하고 같이 망한다. 전혀 스스로의 견제가 안 되는 인사제도를 계속 적으로 써왔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대한민국 기업들 중에서 공채를 실시했던 이병철 회장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든다. 아무리 인생의 필독서로 논어를 읽었다고 했지만 그렇게 경영에 바로 적용을 시켰다니, 역시 고전은 지혜의 산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또한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능력이 없는 것을 걱정하라', 정주영 회장이었나 김우중 회장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돈은 버는 것이 아니라 줍는 거예요. 길을 걷다 보면 돈이 둥둥 떠 보여요.' 기회는 지천에 널려있다. 단지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것을 잡을 능력이나 용기가 안될 뿐이다.
우리는 항상 유교, 즉 공자왈 맹자왈이 조선을 망하게 했다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 반대다. 조선 후기 사대부들은 오히려 공자왈 맹자왈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던 것이다. 그들이 제대로 인, 의, 예, 지를 행하는 사람들이었으면 그 미친듯한 피지배층에 대한 수탈을 했겠는가? 군자는 돈의 중요성을 알지만 얽매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다루는 최고의 제왕학이 바로 논어이다.
하루 만에 읽는다고 힘들었지만 그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계신다고 꼭 한 번 추천해드리고 싶다. 공자의 일생과 과거 우리나라 역사를 같이 접목시키면서 현대비판 역시 다루고 있는 책이다.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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