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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 전시 · 축제

버지니아 모놀로그 / 2009.12.24

by 융커 2023.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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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모놀로그 티켓

 솔직히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예약했다. 그냥 포스터가 멋있었어 예약했다. 하얀색 배경에 빨간색 세로로 그어져 있는 포스트가 아주 몽환적이라서 포스트만 보고 예약했었다. 입술이 비틀어져 있기에, 말을 비트는 연극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입장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포스트

 

 그런데, 입장하는 사람들이 9할이 여성이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보통 연극은 커플이나 친구끼리 보는 것 아닌가? 혼자 오는 여성들이 이렇게 많나?'라는 생각을 할 때쯤 불이 꺼지면서 연극이 시작되었다.


 연극이 시작되면서, 처음부터 제4의 벽은 무너졌다. 등장인물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혹시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무슨 뜻이진 얘기해 줄 수 있으신 분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한 관객이 일어서 답했다. "보지의 독백이요",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아직 성에 관해서 무지함과 부끄러움이 많던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전개였다.

 

 그리고 여성등장인물 셋이서 여성의 성기에 대한 만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냥 듣기 시작했다. 아직도 첫 번째 만담 주제는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여성의 성기를 가리키는 말은 무엇이 있는가였다. 오만 것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보지, 짬지, 씹, 조개, 냄비, 음문, 음부 등등 내가 아는 단어와 모르는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왜 혼자 오는 여성들이 많은지 이해가 같다. 다들 마음 편하게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고민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도 참여해야 하나?'. 하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등장인물 세 사람이 자신의 성기에 대한 만담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위에서 나오는 여성 성기의 별칭에 대한 기원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성기와 엮긴 남자친구와 남편의 얘기까지 시작했다. 사실 오랜 전 기억이라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가지 스토리는 명확하게 기억이 난다. 왁싱에 관한 것이었는데, 남편은 왁싱을 원하고 자신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것 가지고 계속 싸우다가 결국 이혼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세 사람의 당사자 이야기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받은 사연을 재밌게 푸는 형식이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민망하고, 민망하고, 민망했던 시간이 흘러가고, 극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앞으로는 이런 얘기를 극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편하게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은, 저런 표현은 그냥 지나가는 수준으로 하는 세상이 된 것 같다. 오히려, 솔직한 내용을 격이 있게 잘 표현하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 되었다. 2000년대에 어울리는, 2000년대 다운 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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